• [김경민의 썰왕설Re:] '질투의 화신', 말이 안 되는데 왜 현실적일까

    '질투의 화신' 이상한 드라마. SBS 수목드라마 '질투의 화신'이 이상하게 비현실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현실적으로 버무려 눈길을 끌고 있다. /SBS 제공
    '질투의 화신' 이상한 드라마. SBS 수목드라마 '질투의 화신'이 이상하게 비현실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현실적으로 버무려 눈길을 끌고 있다. /SBS 제공

    설(레는) Re(플) : 이 드라마 뭐냐. 뭔가 되게 이상한데 엄청 재밌음(cjm8****)

    SBS 수목드라마 '질투의 화신'은 첫인상부터 강렬했다. 그리고 이상했다. 24부작 중 절반이 진행된 지금도 여전히 이상하다. 그런데 흥미롭고 중독적이다. '질투의 화신'을 보다 보면 드라마라서 가능한 이야기다 싶다가도 불쑥 너무도 현실적인 공감이 고개를 내밀곤 한다. 이것이 "뭔가 되게 이상한데 엄청 재밌다(cjm8****)"는 모순적인 반응과 함께 '질투의 화신'에 홀리는 이유다.

    드라마는 첫 방송 전 예고 영상이나 하이라이트 영상 외에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는 설명글로 대중과 처음 마주한다. '질투의 화신' 측이 내세운 키워드는 '양다리 삼각 로맨스'였다. 대부분 로맨스 드라마가 삼각 관계 또는 사각 관계를 다뤘지만 대놓고 '양다리'를 걸친다니 왠지 생소했다.

    뿐만 아니라 시놉시스에 제목부터 남자 주인공이라고 내건 이화신(조정석 분)을 마초 기자에 유방암 환자라는 것을 보고 웃음보단 충격이 앞섰다. 조정석 공효진 '케미'를 떠올렸을 때 예상했던 밝고 쾌활하고 명랑한 로맨틱 코미디 이미지가 조금 흔들렸다. 남자 유방암 환자가 없는 건 아니라지만, 달콤한 설렘을 주도하는 남자 주인공을 여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유방암으로 설정했다는 데 다소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시도라는 느낌이 컸다.

    '질투의 화신' 있을 법한 캐릭터. '질투의 화신' 인물들의 관계도는 특이하지만 감정선은 현실적이다. /SBS 제공
    '질투의 화신' 있을 법한 캐릭터. '질투의 화신' 인물들의 관계도는 특이하지만 감정선은 현실적이다. /SBS 제공

    물론 '질투의 화신'이 베일을 벗은 후 웰메이드 로맨틱 코미디답게 큰 웃음이 터지지 않는 회차가 없었고, 설렘을 유발하는 장면도 쏟아졌다. 그럼에도 드라마를 파고들수록 고개가 갸우뚱거려질 때가 종종 있었다.

    표나리(공효진 분)는 무려 3년을 키워오던 이화신을 향한 짝사랑을 접고 한 순간에 고정원(고경표 분)의 여자 친구가 된다. 그 후에도 이화신의 유방암 방사선 치료를 위해 자신이 환자로 위장하는 것은 기본, 큰 상처를 받은 날에도 오지랖 넓게 병원에 동행한다.

    이화신과 고정원의 눈앞엔 고난길의 연속이다. 고정원으로선 가족보다 아끼는 친구 이화신이 표나리를 소개시켜줄 땐 언제고 "표나리 사랑한다"고 고백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이화신은 표나리를 좋아하면서도 고정원과 알콩달콩 연애하는 장면을 보지 않을 수 없다.

    이화신은 표나리에게 머리채와 멱살을 잡히고 처참하게 망가지기도 한다. 고정원은 표나리에게 "화신이가 좋아, 내가 좋아"라고 질문을 던진다. 진심으로 지질하고, 바닥까지 유치한 남자 주인공들은 오히려 요즘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에서 찾아볼 수 없던 비현실적인 캐릭터다.

    '질투의 화신' 매력 포인트. '질투의 화신'은 비현실적인 판타지와 현실적인 공감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질투의 화신' 방송 캡처
    '질투의 화신' 매력 포인트. '질투의 화신'은 비현실적인 판타지와 현실적인 공감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질투의 화신' 방송 캡처

    '잘못된 만남'이 불러온 양다리 같은 비도덕적(?)인 삼각 구도, 한 여자를 두고 갈등하는 두 남자의 민낯, 짝사랑남과 남자 친구에게 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여자 등 하나씩 따져보면 이상한 요소 투성이다. 하지만 이것들이 하나의 큰 관계도로 맞물리면 콩트 뺨치는 극화된 코미디와 동시에 지극히 현실적인 '날 것의' 로맨스가 만들어진다.

    표나리는 연애하는 여자로서 가장 보편적인 과제를 안고 있는 인물이다. 이화신에게 사랑을 주기만 하던 그가 고정원으로부터 사랑을 받았을 때 신선함과 행복감은 충분히 노선을 변경할 만큼 매혹적이다. 그렇다고 마음에서 이화신을 단번에 몰아내기엔 감정의 뿌리가 깊다. 사랑을 주는 연애와 사랑을 받는 연애 사이 고민은 필자의 주변인들로부터 흔히 듣는 상담 소재이기도 하다.

    사랑과 우정 사이 고민하는 이화신과 고정원 역시 지질할지언정 둘 중 누가 악역이라고 꼬집을 순 없다. 고정원 앞에서 웃으면서도 몰래 '표나리 사랑해요' 그림을 모으는 이화신이나, 표나리 옆에 있으면서도 이화신을 견제하는 고정원은 오히려 감정을 냅다 포기하고 의리를 택하는 가상의 남자 주인공보다 뻔하지 않다. '멋짐'을 의도하지 않은 행동들이기에 더 현실적이다.

    이화신이 쳐다보지도 않던 표나리를 늦게 좋아하게 된 계기도 리얼하다. 마초 성격과 어울리지 않는 분홍색 환자복을 입고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병실에 누워 있을 때, 곁을 지켜준 표나리는 마음을 파고들기 충분하다. 형의 죽음, 가족의 외면 등으로 외딴 섬에 스스로를 가둔 이화신으로서 아플 때 한결같이 보살펴주는 표나리는 친구이자 연인이고, 말그대로 가족 이었다.

    이처럼 '질투의 화신'은 '알고 보니 운명'이라는 드라마적 설명 대신 당위성을 심어놨다. 어떤 상황이 발생하고 인물의 감정이 변하고 얽히고설키는 모든 과정이 시청자가 보는 그대로 순차적으로 흘러간다. 아무리 픽션이라도 공감이 돼야 수긍이 간다. 말은 안 되는 것 같은데 더 현실적이니 차라리 '이상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그냥 이럴 땐 '질투의 화신 재밌다!'고 외치면 되는 거겠죠?"

    shin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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