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지연의 무비무브] '배우의 왕' 송강호, 그리고 영조

    '사도'를 통해 2년 만에 스크린에 돌아온 배우 송강호. '사도'의 주연배우 송강호는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영조와 닮은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이새롬 기자
    '사도'를 통해 2년 만에 스크린에 돌아온 배우 송강호. '사도'의 주연배우 송강호는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영조와 닮은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이새롬 기자

    "세상만사 '일장일단'(一長一短), 새옹지마(塞翁之馬)"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작은 일에 울고 화내는 필자를 달래며 자주 '일장일단'과 '새옹지마'란 옛 말을 강조하곤 했다. 만사에는 장점이 있고 단점도 있다는 뜻의 일장일단, 그리고 삶이란 복이 화로 바뀌고, 화가 복으로 변할 수 있다는 새옹지마는 그렇게 내 머릿속에 각인됐다. 할아버지는 아쉬웠던 점에 대해선 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며 나를 위로하곤 하셨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갖고 싶은 것이 많고, 웬만하면 다 가져야했고, 삶의 유일한 목적이 스스로의 행복에 치우쳤던 필자에게 '일장일단' '새옹지마'란 네글자는 위로는커녕 가장 잔인하고 가혹한 말이었다. 사회에 나와서야 알았다. 직접 냉혹한 현실과 부딪혀 보니 할아버지의 말은 비로소 가슴으로 받아들여졌다. 아직도 조금씩 알아가고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최근 '일장일단' '새옹지마'를 받아들임에 조금은 편해진 계기가 생겼다. 나만의 '넘버 원', 배우 중의 배우 송강호가 자신의 삶을 일장일단에 비유해 설명했기 때문이다.

    '국민배우'란 수식어가 비교적 자연스러운 송강호는 지난 1991년 연극 '동승'으로 처음 연기를 시작한 지 24년 차 '고참'이다. 스크린 배우로 무대를 바꿔 탄 지는 올해로 꼬박 20년째다. '내공'이 묻어나는 연기 인생만큼이나 수많은 작품에 출연한 그는 조직폭력배, 중사, 구멍가게 주인, 목사, 납치범 등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했다.

    화려한 필모그래피를 자랑하는 배우 송강호. 스크린 배우 20년차인 배우 송강호는 다양한 작품을 통해 탄탄하게 연기경력을 쌓았고 그만큼 연기한 캐릭터 또한 다양하다. /영화 포스터
    화려한 필모그래피를 자랑하는 배우 송강호. 스크린 배우 20년차인 배우 송강호는 다양한 작품을 통해 탄탄하게 연기경력을 쌓았고 그만큼 연기한 캐릭터 또한 다양하다. /영화 포스터

    2030 세대는 공감하겠지만 유년시절 대부분을 송강호 연기를 통해 국내 영화산업을 경험했다. '쉬리'(1998년)와 '공동경비구역 JSA'(2000년) '살인의 추억'(2003년)을 보며 느꼈던 가슴 속 뭉클함은 지금도 여전하다. 지난 2013년 '변호인'을 통해 느낀 강한 충격 또한 잊지 못할 잔상으로 남아 있다. 스크린 속 송강호는 언제나 친근한 동네 아저씨였고 누군가의 아버지였다. 그래서 그의 연기에 펑펑 눈물을 쏟고 함께 웃을 수 있었다.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면서도 일관되게 소시민 캐릭터를 고수한 부분도 특징적이다. 차곡차곡 쌓아온 필모그래피와 남다른 연기력은 그를 현재 최고의 배우, 혹은 스타로 불리게 한다. 그래서인지 '변호인' 이후 2년 만에 돌아온 송강호는 처음으로 한 나라의 왕으로 변신해 나타났다. 소시민 캐릭터와 다른 배역이다. 그동안 맡은 배역 중 최고의 신분이다. 그가 연기한 왕은 또 어떨까.

    '왕의 남자'를 연출한 이준익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사도'에서 송강호는 극 중 조선의 제21대왕 영조로 분한다. 영조는 조선의 왕 중 가장 오랜 시간 재위했다. 동시에 재위 내내 왕위계승 정통성 논란에 시달렸고 결국 자신의 아들을 뒤주에 넣어 죽인 잔인한 아버지로 역사에 기록된 비극적인 인물이다. 외롭고 외로웠던 왕, 그리고 아들을 죽인 매정한 아버지다.

    16일 개봉한 영화 '사도'에서 영조 역을 맡은 배우 송강호. 그동안 맡은 배역 가운데 최고 신분으로 나타나 '송강호식 영조'를 연기한다. /쇼박스 제공
    16일 개봉한 영화 '사도'에서 영조 역을 맡은 배우 송강호. 그동안 맡은 배역 가운데 최고 신분으로 나타나 '송강호식 영조'를 연기한다. /쇼박스 제공

    '사도' 인터뷰를 통해 송강호를 직접 만날 기회가 생겼다. 인터뷰 내내 '사도'에 대한 이야기를 즐겁게 늘어놓던 그에게 '왕'이 된 소감을 물었다. 여유로운 그의 웃음소리가 경쾌했고 '변호인'을 통해 봤던 그와는 사뭇 달라 보였지만, 의외의 대답이 돌아온다.

    송강호는 "영조대왕은 저와 닮은 부분이 많더라"며 배우라는 타이틀을 벗은 뒤 느껴야 하는 외로움과 소통의 부재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그는 "사실 배우라는 직업이 굉장히 외롭다. 연기를 잘하고자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하지만, 언제나 고독하고 카메라 앞에 서면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부분이 있어서 외로움을 느낀다. 영조대왕도 그런 고독을 느꼈을 거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식과 소통의 부재 또한 비슷하다. 아들과 살갑게 말하고 지내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부분이다. '사도'를 촬영한 후에 아들을 만나니 더 대화를 나누기 어렵더라"고 멋쩍게 말했다.

    영조를 닮은 배우 송강호. 배우 송강호는 '사도'에서 자신이 녹여낸 영조대왕의 외로움을 이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쇼박스 제공
    영조를 닮은 배우 송강호. 배우 송강호는 '사도'에서 자신이 녹여낸 영조대왕의 외로움을 이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쇼박스 제공

    배우 이름으로는 어떤 수식어도 부럽지 않은 송강호가 외로움에 대해 토로하고 아들과 나누는 소통의 방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자신의 영화를 보고 자란 필자와 나누는 대화를 통해 은근히 아들과 대화할 해결방식을 알아가고자 노력하는 듯 보였다.

    맞다. 천하의 송강호도 배우이기 전에 누군가의 아버지였고 평범한 생활인이었기에 '일장일단'의 진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의 말처럼 송강호는 상당 부분, 아니 아주 많이 영조와 닿아 있었다.

    [더팩트ㅣ성지연 기자 amysung@tf.co.kr]
    [연예팀ㅣ ssent@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