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F인터뷰-'걷기왕' 심은경]

    배우 심은경이 영화 '걷기왕'을 촬영하면서 겪었던 고민과 깨달음을 공유하고 있다. /남용희 인턴기자
    배우 심은경이 영화 '걷기왕'을 촬영하면서 겪었던 고민과 깨달음을 공유하고 있다. /남용희 인턴기자

    '걷기왕' 심은경 "좋아하는 연기 하면서 천천히 다가가겠다"

    '걷는' 배우 심은경(22)이 영화 '걷기왕'(감독 백승화)을 만났다.

    심은경은 지난 20일 개봉한 '걷기왕' 제목처럼 조급한 뜀박질보다는 차분하고 침착한 걷기가 잘 어울리는 배우다. 나이에 비해 데뷔 13년 차라는 경력은 어깨를 조금 무겁게 짓누를 수도 있겠지만, 아역으로 시작해 영화 '써니'(2011년) '수상한 그녀'(2014년) 등 흥행력 갖춘 여배우로 계단 밟듯이 차근차근 성장했다.

    덕분에 심은경 이름 석 자가 낯설지 않은 배우가 됐다. 이때까지 걸어왔던 길도, 앞으로 걸어갈 길도 스스로 명확하게 방향을 알고 가는 배우라는 인상도 심었다. 그런 그가 '걷기왕'을 만나기 전까지 흔들리는 경험을 겪었다. 어쩌면 그에겐 필수적인 성장통이었지만, 정작 흔들리는 땅 위에 선 이에겐 어지러운 혼란일 수밖에 없었을 터다.

    심은경 자신을 탐구하며 충분히 한바탕 헤매고 고민했기에 '걷기왕'으로 내디딘 또 한 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분명하고 명확한 발자국으로 찍혔다. 최근 <더팩트> 취재진이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한 카페에서 만난 심은경은 언제든 경기가 원점이 되더라도 어느 곳이라도 출발점으로 만들 수 있는 20대였다. 그의 걸음걸이가 느껴지는 대화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풀어봤다.

    심은경이 '걷기왕'을 선택하고 호감을 느꼈던 이유를 말하고 있다. /남용희 인턴기자
    심은경이 '걷기왕'을 선택하고 호감을 느꼈던 이유를 말하고 있다. /남용희 인턴기자

    - '걷기왕'이 상업적인 영화는 아닌데 어떻게 선택하게 됐나.

    "오래전부터 다양성을 추구하는 영화에 관심이 많아 작업해보고 싶었다. 다양성 영화가 많이 발전해야 한다. 상업 영화와는 촬영장 분위기나 조건에 차이가 있지만 개의치 않고 그에 맞게 촬영하는 게 배우의 자세라고 생각했다. 두려움은 전혀 없었다.

    극 중 만복이는 평범하고 밋밋해 보일 수도 있는 캐릭터인데 상황마다 만들어낼 수 있는 연기 폭이 넓었다. 단순한 코미디 캐릭터가 아니라 다양한 감정을 연기할 수 있어서 현실적으로 바라보게 됐다. 아역 활동을 해서 (이미지가)굳어질까봐 스무살 이후로는 고등학생 역할을 피하려고 했다. 만복이는 단순히 고등학생을 그린다기보다는 고등학생을 통해 젊은 세대에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뚜렷하고, 분명한 화두를 던지고 있어 결코 어린 캐릭터만은 아니었다."

    - 만복이를 연기하면서 학창시절 기억을 많이 떠올렸겠다.

    "만복이 같은 면모가 많았다. 수업시간에 졸거나 떡볶이 먹으러 점심시간에 나가는 경험도 있었고 재밌게 다가왔다. 그 시절엔 연기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나는 커서 어떤 사람이 될까', '연기는 계속할 수 있는 걸까', '내가 지금 이렇게 활동하는 게 잘하는 걸까' 고민들이 많아 꿈에 대해 불안했던 시기여서 와 닿았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가끔 나 자신을 놓고 연기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때로는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줘도 나쁘지 않겠더라."

    - 요즘 슬럼프에 관한 이야기를 언급한 적이 있는데 '걷기왕' 촬영 시기와 맞물리나.

    "영화 '널 기다리며'(2016년) 개봉 후 '걷기왕' 촬영을 들어갔고, 출연 제의는 지난해 여름에 받았다. 내 일정을 기다려줬던 작품이라서 스태프에게도 고맙고 그렇게 해서라도 참여하고 싶었다. 올해 초 고민이 많았던 시기였고 연기적으로 많이 헷갈렸다. 슬럼프라고도 할 수 있겠지. 그런 시기에 '걷기왕' 시나리오를 우연히 읽어봤는데 메시지와 전반적인 기운이 좋았다. 캐릭터에 매료돼 주저 없이 출연을 결정했다. 애초에 고민을 많이 하지 말자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영화를 굉장히 편안한 자세로 대하려고 했고, 물 흘러가듯이 자연스러운 모습을 연기적으로 끌어내려고 했다."

    - 고민을 통해 미래에 대해 확고해진 부분이 있나.

    "연기에 대한 고민과 슬럼프는 매 순간 찾아온다. 아직까지도 고민이 끝난 건 아니다. 어쩔 땐 걱정도 많고 불안하기도 하다. 고민이 너무 많아서 이런 습관을 바꾸려고 했는데 그게 더 스트레스더라. 천성이니 나를 편하게 놨다. 지난해보다는 올해 좀 더 편하다. 내려놓는다는 것에 대해 진다고 생각하지 않고 또 다른 나를 발견하고 시야를 넓혀준다고 생각한다."

    심은경이 대중에게 친근하게 천천히 다가가겠다는 다짐을 밝히고 있다. /남용희 인턴기자
    심은경이 대중에게 친근하게 천천히 다가가겠다는 다짐을 밝히고 있다. /남용희 인턴기자

    - '걷기왕'으로 힐링한 격이다.

    "작품에 감사하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에 공감이 갔고 나를 위해 쓴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시사회에서 영화를 보고 가슴이 뭉클했다. 원래 우는 스타일이 아니라 냉정하게 보는데 내가 출연한 영화지만 영화 자체로 즐길 수 있었다는 게 행복했다. 그런 감정들이 반가웠다. 그렇게 고민하고 힘들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급하게 가지 않아도 되겠더라. 섣불리 생각했던 점도 많았고 천천히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가도 괜찮겠더라. 정말 위로가 된 영화였다."

    - 현장에서 배운 것들도 많겠다.

    "현장을 다니면서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것들을 많이 배웠다. 이런 생각의 중심엔 어머니가 있다. 어머니 공이 가장 크다. 아역배우들은 주위에서 많이 도와줘야 한다. 학생으로서 본분도 잊지 않고 연기도 즐기면서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비록 10대에 연기활동을 시작했지만 연기와 본분을 확실히 분리하면서 지낼 수 있었고 학교에 다니면서 그 시기에 쌓을 수 있던 감수성이나 추억을 많이 쌓아서 다행이다. 그런 부분들이 어머니가 가르쳐줘서 연기를 계속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포기했을 거다."

    - 결과적으로 얻게 된 깨달음이 있나.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그냥 연기가 마냥 좋았던 사람이었다. 어느 순간 나이가 들면서 연기란 개념이 어릴 때와는 달라졌고 그 과정에서 연기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잘 극복하느냐가 중요하다. 한동안 연기를 즐기는 법을 잠시 잊었던 것 같다. 연기를 기술적으로 잘하려고만 했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부분도 있다. 다시 연기를 소중히 대하는 법도 알게 됐다. 뭔가에 연연하지 않고 좋아하는 작품을 마음껏 하면서 천천히 친근하게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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