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밀하게 위대하게…한류가 달라졌어요

    드라마 '겨울연가'의 선풍적인 인기와 보아 동방신기 카라 소녀시대 등이 일본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시기와 비교해 현재 일본 한류 붐은 다소 가라앉은 분위기라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일본 현지에서는 한류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게 아니라 형태가 변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일본의 여러 신인 아이돌 그룹들처럼 소규모 팬미팅과 거리 공연, 악수회 등을 진행하며 활동의 저변을 확대하고 있는 한국 아이돌 그룹들. 일본에서의 K팝 현주소를 분석했다. <편집자 주>

    이달 초 도쿄 이케부쿠로 음반 판매점 HMV 풍경. 원조 한류 스타 류시원부터 한일 양국에서 절대적인 인기를 누리는 동방신기의 사진집이 눈에 띈다. /도쿄=정진영 기자
    이달 초 도쿄 이케부쿠로 음반 판매점 HMV 풍경. 원조 한류 스타 류시원부터 한일 양국에서 절대적인 인기를 누리는 동방신기의 사진집이 눈에 띈다. /도쿄=정진영 기자

    메가 히트 그룹이 없다? 오히려 다양성은 확대

    [더팩트ㅣ정진영 기자] 지난 2003년 일본 NHK 방송에서 한국 드라마 '겨울연가'가 '후유노소나타(겨울소나타)'란 이름으로 정식 방송됐다. 첫사랑의 풋풋한 감성을 간직한 드라마는 일본 중년층 여성들의 향수를 불러일으켰고 주연을 맡은 배우 배용준과 최지우는 '욘사마', '지우히메'라는 별칭을 얻으며 큰 사랑을 받았다.

    가요계에서는 보아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이 해에 발매된 싱글 앨범 '샤인 위 아'는 보아에게 처음으로 발매 당일 오리콘 차트 1위라는 선물을 안겼다. 2003년 초 발매한 '발렌티'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도쿄 오사카 나고야 등을 도는 첫 번째 라이브 투어도 열렸다.

    이 배턴을 동방신기가 훌륭하게 이었다. 쟈니스사무소 소속 아이돌들이 주름잡는 일본 남성 아이돌 시장에서 동방신기의 활약은 두드러졌다. 현재 일본에서 '국민 아이돌'이라 불리는 아라시를 압도할 정도였으니 그 인기를 실감할 만하다. 한 마디로 2000년대는 한국의 드라마와 K팝 모두 일본인들에게 두루 사랑받던 시기였다.

    2000년대 일본에서 큰 인기를 누린 가수 보아(왼쪽)와 동방신기. 두 아티스트는 일본 국민 아이돌들의 인기를 위협할 정도의 지위를 가졌다. /이효균·남윤호 기자
    2000년대 일본에서 큰 인기를 누린 가수 보아(왼쪽)와 동방신기. 두 아티스트는 일본 국민 아이돌들의 인기를 위협할 정도의 지위를 가졌다. /이효균·남윤호 기자

    ◆ 풀뿌리 아이돌의 시작

    2010년대에 접어들며 일본에서 K팝에 대한 인기는 다소 주춤하는 듯 보였다. 일본의 대표적인 연말 가요 프로그램인 NHK '홍백가합전'에서도 2011년 이후 한국 가수들을 만나기 힘들어졌다.

    하지만 이를 한류의 종식으로 보기는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강렬한 한 방은 없지만 대신 아래에서부터 차곡차곡 인기를 쌓아 올려가고 있는 점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레코드 점에서의 팬미팅이다. 국내에서 시크릿의 여동생 그룹으로 유명한 소나무는 지난 3일부터 4일까지 일본 최대 앨범판매점인 시부야 타워레코드에서 특별 이벤트를 진행, 팬들에게 명함을 전달하고 미니 토크쇼도 진행했다. 또 다른 걸그룹 디홀릭 역시 지난달 같은 곳에서 첫 번째 쇼케이스를 열었다.

    디홀릭 일본 쇼케이스 현장 사진. 멤버들은 쇼케이스 이후 악수회와 팬사인회 등을 열고 팬들과 만났다. /H-MATE 제공
    디홀릭 일본 쇼케이스 현장 사진. 멤버들은 쇼케이스 이후 악수회와 팬사인회 등을 열고 팬들과 만났다. /H-MATE 제공

    하이포와 걸스데이처럼 오랜 기간 일본 현지에 체류하며 적극적인 프로모션을 펼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하이포는 지난 7월 10일 일본으로 출발, 미니앨범 '하이 서머' 발매를 시작으로 약 50일 동안 일본에서 체류하며 16회의 프로모션 이벤트와 34회의 공연, 2회의 애프터 토크쇼 및 40회의 사인회를 진행했다. 걸스데이는 도쿄와 오사카를 중심으로 모두 28회에 걸쳐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일본의 경우 신인 아이돌 그룹들이 거리 공연, 소규모 이벤트로 팬들과 만나 인기를 높이는 케이스가 많다. 현재 일본 현지 걸그룹 가운데 가장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AKB48의 경우에도 악수회라는 행사를 통해 친근감을 높인 게 인기 상승의 주요인으로 꼽힌다. 이들은 현재도 지역 각지에 전용 극장을 마련해 매 주 공연을 진행하며 팬들과 소통한다. 지난 2009년 데뷔해 독특한 콘셉트로 인기를 끌고 있는 모모이로클로버Z 역시 정식 데뷔 전 도쿄의 시부야 요요기 공원에서 버스킹을 진행했고, 데뷔 후에도 수시로 무료 라이브 공연을 열고 있다.

    이 같은 프로모션 전략은 단기간에 거대한 성과를 내긴 어렵지만 오랜 시간 지속된다는 게 장점이다. 실제 2000년대 중후반 일본에서 지속적으로 공연을 펼치며 인기를 다졌던 그룹 초신성이나 SG워너비가 현재도 현지에서 많은 지지를 얻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초신성은 지난달 일본 첫 정규앨범 '나나이로'를 발매 당일 오리콘 차트 1위, 주간 차트 3위에 랭크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샤이니 도쿄 돔 공연 현장. 돔 공연은 일본에서 아티스트의 인기를 가늠하는 척도 가운데 하나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샤이니 도쿄 돔 공연 현장. 돔 공연은 일본에서 아티스트의 인기를 가늠하는 척도 가운데 하나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 샤이니·엑소·빅뱅…여전한 한류 파워

    풀뿌리 아이돌들이 자라나는 사이 여전히 강력한 파워를 보여주는 그룹들도 여럿 있다. 일본에서 톱 클래스 아이돌을 판단하는 척도 가운데 하나가 5대 돔 투어다. 이 투어로 7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불러모은 동방신기는 입대 등으로 잠시 자리를 비우게 됐지만, 이 자리를 빅뱅이 훌륭하게 채웠다. 빅뱅은 지난해 돔 투어로 약 77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샤이니 역시 지난 3월 도쿄돔에서 두 차례 공연을 진행한 데 이어 내년 1월부터 아레나 투어에 돌입한다. 이미 국내는 물론 중화권에서까지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그룹 엑소는 지난 8월 일본 최대 규모의 음악 축제인 '에이네이션' 무대에 올라 정식 데뷔를 알렸다. 이들은 다음 달 4일 일본에서 첫 번째 싱글 앨범을 발매하며, 이를 기념해 다음 달 6일부터 8일까지 도쿄돔에서 13일부터 15일까지는 오사카 교세라돔에서 공연을 펼친다.

    에이핑크는 지난 4일 일본 도쿄 국제포럼 홀에서 첫 일본 투어 '에이핑크 1st 라이브 투어 2015 [핑크 시즌]'을 열었다. 5000여 명의 팬들이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에이큐브엔터테인먼트 제공
    에이핑크는 지난 4일 일본 도쿄 국제포럼 홀에서 첫 일본 투어 '에이핑크 1st 라이브 투어 2015 [핑크 시즌]'을 열었다. 5000여 명의 팬들이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에이큐브엔터테인먼트 제공

    걸그룹 가운데서는 에이핑크의 활약이 돋보인다. 이들인 최근 일본 도쿄 국제포럼 홀에서 라이브를 진행했다. 도쿄 국제포럼 홀은 공연용으로 만들어져 최고의 음질을 자랑한다. 지난 2010년 보아가 'X마스 투어' 당시 이용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이처럼 일본에서 K팝 스타들의 활약은 현재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2000년대 초반에 비해 두드러지는 방송 활동은 없지만 공연과 이벤트로 쌓아올린 인기는 각종 차트와 티켓 파워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일본에서 K팝의 인기는 사그러들었다기엔 너무 건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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