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F인터뷰] '마을' 장희진, 비로소 느리게 걷는 미학을 즐기다

    장희진, 천천히 그래서 더 넓게. 배우 장희진이 빠르지 않지만 더 깊은 내공을 다져가는 배우의 길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새롬 기자
    장희진, 천천히 그래서 더 넓게. 배우 장희진이 빠르지 않지만 더 깊은 내공을 다져가는 배우의 길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새롬 기자

    '마을' 장희진 "느려도 소중한 걸 지켜야죠"

    [더팩트 | 김경민 기자] 배우 장희진이 어느덧 데뷔 13년 차에 접어들었다. 꾸준한 활동으로 눈에 익숙하지만 캐릭터로 대중의 인식 속에 깊은 잔상을 남긴 작품이 많진 않다. 미모나 연기력, 어느 하나 부족해 보이지 않았지만 아직 때를 만나지 못한 배우라는 아쉬움을 남겼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 SBS 수목드라마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에서, 그것도 카메오 출연과 같은 분량의 김혜진 역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드라마는 김혜진의 죽음으로 시작했다. 그가 왜 죽었는지 파헤치는 게 바로 스릴러 드라마의 포인트였다. 점점 비밀이 풀리면서 자신을 버린 엄마, 그리고 상처를 간직한 여인으로서 다양한 폭의 감정을 넘나들었다.

    여러 감정의 혼재는 김혜진이란 캐릭터에만 머무른 것이 아니었다. 시간을 돌고 돌아 만난 김혜진은 장희진에게 13년 차 배우로서 짐을 조금 내려놓는 방법, 그리고 천천히 걸으며 찬찬히 둘러보는 시간을 선물했다.

    - 김혜진은 주변 상황이 변화무쌍해서 극 내내 감정이 참 복잡해 보였다.

    그걸 표현하는 게 쉽진 않았다. 혜진이의 감정이 대본에 굉장히 잘 나타나 있다. 굳이 감정을 준비하지 않아도 몰입하고 대사를 하면 감정이 생기더라. 혜진이의 시간이 매끄럽게 연결되는 게 아니라 회상 장면들이 많아서 앞뒤 정황을 모른 채 유추하면서 연기하는 게 곤란했다. 그래도 제작진이나 배우가 굉장히 믿어줬다.

    장희진, 비밀 이미 알고 있었다. 장희진이 '마을' 속 김혜진의 친모에 대해 미리 알았다. /이새롬 기자
    장희진, 비밀 이미 알고 있었다. 장희진이 '마을' 속 김혜진의 친모에 대해 미리 알았다. /이새롬 기자

    - 극 초반엔 김혜진이 중요한 열쇠를 가진 인물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시놉시스 상에도 기타 인물 중 한명이긴 했다. '슬프고 신비롭고 처연한 느낌' 외에 설명이 없었다. '혜진의 죽음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라는 것 외에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인물이다. 초반 팜므파탈 캐릭터로 등장해 불륜 코드가 있었고 갑자기 사라져서 슬픈 사연이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이렇게 중요해질 거라는 걸 알았다면 부담스러웠을 텐데 처음엔 '카메오 배우'라고 불릴 정도로 가볍게 시작했다. 그런데 뒤로 갈수록 어깨가 무거워지긴 했다. 귀신 역도 새롭고 임팩트가 있어서 촬영하는 나도 즐겁더라.

    비중을 생각했다면 선택하기 쉽지 않았는데 그 부분은 내려놨다. 짧지만 혜진이의 존재감을 살리고 싶었다. 예전에는 주조연 여부나 분량을 많이 따졌다. 출연작이 뭘 얻을 수 있는 발판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젠 내려놨다. 카메라에 예쁘게 나오느냐 아니냐 욕심도 버리고 작품을 선택했다.

    - 김혜진의 친모가 윤지숙(신은경 분)이라는 출생의 비밀을 언제 알았나.

    사실 윤지숙과 머리채를 붙잡고 싸우는 장면을 촬영할 때 이미 알고 있었다. 나중에야 유전자 샘플을 얻기 위해 머리카락을 잡은 게 나왔지만 촬영할 때부터 어떤 느낌으로 머리채까지 잡고 싸우는 건지 제작진이 살짝 이야기해줬다.

    대체할 수 없는 직업, 배우. 장희진은 배우라는 직업에서 느끼는 외로움을 털어놨다. /이새롬 기자
    대체할 수 없는 직업, 배우. 장희진은 배우라는 직업에서 느끼는 외로움을 털어놨다. /이새롬 기자

    - 비밀이 많은 드라마라서 배우들 사이에서도 추리하는 재미가 있었다고.

    처음엔 제작진이 한소윤(문근영 분)을 범인이라고 했다. 또 강주희(장소연 분)라고 해서 대본이 바뀌었나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다른 배우들에게 다 '네가 범인이야'라고 말했더라. 다들 자기가 범인인 줄 알고 연기했다(웃음). 제작진이 똑똑한 거지. 문근영은 대본을 보고 나서야 김혜진과 윤지숙의 모녀 관계를 알고 충격받았다. 그런데 다들 자신의 캐릭터에 대한 비밀들을 하나씩 알고 있더라. 최재웅은 아가씨가 살인마라는 걸 알고 있었다더라.

    - 김혜진의 비밀을 알고 나서도 그렇게 먹먹한 상황에 몰입하기 힘들었겠다.

    김혜진과 비슷한 게 없다. 나는 행복한 가정에서 좋은 직업을 갖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살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외로운 게 있는데 이 감정을 혜진이의 외로운 상황과 맞물리니 몰입이 되더라. 30대가 되니 문득 나도 모르게 외롭긴 하더라. 김혜진이 갖고 있는 아픔이나 외로움은 경험해보지 않았지만 이해는 되면서 안쓰럽더라.

    - 문득 외로울 땐 언제길래.

    배우란 직업은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어떤 장면이 자신 없고 못할 것 같아도 내가 혼자 해내야 한다.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 그런 책임감에서 오는 외로움이 있다. 연예인이라고 하면 사랑도 받고 돈도 버는 직업으로 보이지만 쉽지 않다. 주변 사람들을 더욱 잘 챙기려고. 나중에 혼자 되면 슬플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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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천히 발전하는 스타일" 장희진이 인기에 조바심을 갖지 않고 천천히 길을 걷겠다고 말했다. /이새롬 기자

    - '마을'로 또다시 차근차근 한 계단 올라선 느낌이다.

    나보다 늦게 시작한 사람들이 톱스타가 된 걸 보면서 내가 느리다는 생각은 했다. 원래 성격도 더디다. 유행도 지난 뒤에 좋아한다. 천천히 발전하는 스타일이다. 배우로서 시작이 나쁘지 않았지만 지금 이 자리가 데뷔 때 위치 그대로다. 좋아하는 일이 잘하는 일이 되겠지만 시간 싸움이겠지. 예전엔 눈치 없고 말귀도 못 알아듣고 어벙했다. 조금씩 예민해지고 완벽해지려고 하고 자기관리도 하게 됐다. 물론 지금도 조바심은 난다. '마을'을 잘 끝냈으니 차기작도 고민된다. 그렇지만 이런 걱정은 평생 하겠지. 같이 가야 하는 친구 같다. 스트레스도 즐기려고 한다.

    - 느리지만 꼭 붙잡고 가야겠다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 소중한지 아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이상형도 멋있는 '나쁜 남자'였는데 이젠 바르고 진중하면서 자기를 잘 아는 사람이 좋다. 성공도 좋고 돈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행복해지려고 노력하고 소중한 걸 지키려는 사람이 되겠다.

    shin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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